유럽 종양학회 ESMO를 참석하고 난 후. #blog
### 임상시험은 왜 하는가?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든 기술은, 결국 직접 사람에게 적용해봐야 그 효능을 확인할 수 있다. 마우스(쥐)나 원숭이로 많은 실험을 하지만, 인간에게 효능 및 부작용이 확실하게 확인되는 방법은 직접 그 약(또는 수술)을 적용해서 확인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임상시험의 구조는 오랜 역사 속에서 변화해 왔는데, 현재는 전임상 / 1,2,3상 (phase) 구조가 가장 확립되어 있는 형태이다. 전임상에서는 인간이 아닌 대상에 약물을 적용하고, 1,2,3 상에서는 인간에게 적용한다. 전임상에서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사용하여 약물의 효능 및 부작용을 찾고, 효과가 확실한 경우 임상으로 넘어오는데, 인간에게 직접 실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부분 관찰로 확인할 수 있는 지표에 의존한다. 항암제 전임상의 경우에는 약물 투여 후 종양의 크기(volume) 변화로 효과를 측정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1상에서는 약물의 안정성, 즉, 적정 용량을 확인한다. 모든 약물은 효과와 독성이 용량에 비례하기 때문에, 1상에서는 효과가 독성을 확실히 이길 수 있는지 (죽는 질병에서 약물의 가려움 정도의 부작용은 참을 만 하나, 눈이 안 보이게 되는 실명 부작용은 고민해봐야 한다), 효과가 독성에 비해 확실한 용량은 어디인지 결정한다.
2상에서는 약물의 효과를 검증한다. 1상에서 표준화된 용량을 더 정밀하게 나누며(투약 횟수, 용량) 효과가 어떠한지에 더 집중한다.
3상에서는 기존 치료와 비교를 진행하는데, 2상에서 효과가 확실하더라도 3상에서 기존 치료에 비해 열등한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임상이 실패하거나 치료 표준으로 자리잡기 어려워진다.
### [[Topics/Medical/임상시험|임상시험]]성공하기
임상시험을 성공시키려면 결국 ‘좋은 약’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기존에 비해 월등히 효과가 좋고 부작용이 적은 약을 개발한다면, 모든 임상을 쉽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좋은 점수를 받으면 시험을 통과하기 쉽다는 말과 같으므로, 제약회사와 의사들은 많은 방법을 동원해서, 적절한 시험점수로도 시험을 통과할 수 있게 한다.
임상시험을 효과적으로 ‘성공’시키기 위해서 제약화사가 항암제 분야에서 임상시험을 효과적으로 통과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을 소개하려고 한다.
### 1. 적응증 쪼개기 (feat. 코호트 설계)
| **Cohort** | **포함 기준** | **목적** |
|:-:|:-:|:-:|
| D | HER2 TKI 미치료, HER2-ADC 미경험 | 표준 치료 후 환자에서 ‘진짜 약효’ 확인 |
| E | HER2-ADC (예: T-DXd) 경험 | 교차 내성·후속 효과 검증 |
| F | 전신치료 전 환자 | 최대 약효 확인용 “clean baseline” |
| G | 안정된 뇌전이 보유 | 중추신경계 효과 탐색 |
SOHO-01, *Le et al.*, **NEJM 2025**
비소세포폐암 환자에게 진행한 위의 임상시험에서의 코호트 설계를 보면, 굉장히 복잡하고 교묘하게 설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환자를 치료 이력으로 먼저 나누고, 뇌전이 여부까지 나눠서 확인함으로서 임상시험 결과에 따라 확실한 효과가 있는 그륩을 찾을 수 있게끔 설계해두었다. D E 그룹은 서로 교집합이 없개 설계되었지만, G 그룹과 F 그룹은 다른 그룹과 겹칠 수 있게 설계해두었다.
위와 같은 방식으로 설계한 임상시험은, 전채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설계에 비해 실패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시험하는 항암제의 효과가 뇌전이가 있는 환자에게만 나타나더라도, 적어도 FDA에 ‘뇌전이 있는 폐암 환자’에게 승인 요청서를 낼 수 있게 된다.
### 2. 바이오마커로 환자 선별하기
임상시험의 성공 확률을 높이는 또 다른 전략은 바이오마커(biomarker)를 활용한 환자 선별이다. 앞서 이야기한 코호트 나누기 방식을 분자생물학적 근거를 가지고 더 세세하게 적용한 방법이다.
모든 암 환자에게 동일한 약이 효과를 보이는 것은 아니고, 특정 유전자 변이나 단백질 발현 패턴을 가진 환자들에게만 약물이 효과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환자를 선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HER2 양성 유방암 환자에게만 HER2 표적 치료제를 투여하거나, EGFR 변이가 있는 폐암 환자에게만 EGFR 억제제를 사용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바이오마커로 환자를 선별하면:
* **임상시험 성공률이 급격히 증가한다** - 약이 효과를 보일 가능성이 높은 환자만 선별하기 때문이다
* **적은 수의 환자로도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할 수 있다** - 효과 크기가 크면 필요한 환자 수가 줄어든다
* **FDA 승인 후에도 프리미엄 가격을 정당화할 수 있다** - '맞춤형 치료'라는 명분이 생긴다
⠀물론 이는 바이오마커 검사가 필수가 되어 전체 시장 규모는 줄어들 수 있지만, 정교하게 설계된 강력한 효과를 가진 약물을 적용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약가를 높게 책정할 수 있어 제약회사에게는 여전히 매력적인 전략이다.
### 3. Surrogate Endpoint의 활용
임상시험에서 가장 확실한 결과 지표는 '전체 생존기간(Overall Survival, OS)'이다. 환자가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를 측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확인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평균 생존기간이 2-3년인 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한다면, 결과를 확인하는 데만 수년이 소요된다.
이에 제약회사들은 Surrogate Endpoint, 즉 대리 평가변수를 활용한다:
* **무진행 생존기간(PFS)** - 암이 진행되지 않고 유지되는 기간
* **객관적 반응률(ORR)** - 종양이 얼마나 줄어들었는가
* **완전 관해율(CR)** - 종양이 완전히 사라진 환자의 비율
⠀이런 지표들은 몇 개월 안에 확인이 가능하다. FDA도 특정 조건 하에서는 이런 대리 평가변수만으로도 신속 승인(Accelerated Approval)을 허용한다. 제약회사는 일단 승인을 받고 시장에 진입한 후, 나중에 OS 데이터를 보충하면 된다.
문제는 PFS가 좋아도 OS가 개선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점이다. 즉, 암의 진행은 늦췄지만 환자가 실제로 더 오래 사는 것은 아닌 경우다. (점점 과하게 사용되는 보조지표들에 대해 FDA 는 “모든 임상시험의 기초 지표는 OS다”라고 하는 보도자료를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시장에 출시된 약은 관성적으로 처방되는 경향이 있어,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충분히 활용할 만한 전략이다.
### 5. 병용요법(Combination Therapy)의 마술
단독으로는 효과가 애매한 약물도 기존 표준 치료와 병용하면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제약회사들은 이를 적극 활용한다:
* 자사 신약 + 기존 표준 치료 vs 기존 표준 치료만
* 이렇게 비교하면 신약의 추가 효과만 증명하면 되므로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더 교묘한 전략도 있다. 자사가 이미 시장에서 성공한 약 A를 보유하고 있고, 새로운 약 B를 개발했다면:
* A + B vs A 단독
* 이렇게 설계하면 B의 효과를 증명하면서, 동시에 A의 처방도 유지할 수 있다
* 심지어 A의 특허가 곧 만료된다면, A+B 병용요법으로 새로운 특허를 확보하여 시장을 연장할 수 있다
### 제약회사의 관심, 과학적 임상시험의 함의
제약회사들은 코호트를 정교하게 쪼개고, 바이오마커로 환자를 선별하며, Surrogate endpoint를 활용하고, 병용요법을 설계하면서 임상시험의 성공 확률을 최대한 높인다. 이는 비윤리적이거나 불법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행 규제 체계 안에서 허용된, 매우 합리적인 전략이다.
문제는 이렇게 최적화된 임상시험 결과가 실제 임상 현장에서의 효과를 극대화하거나 심지어는 과대평가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엄격하게 선별된 환자군에서 나온 결과가,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실제 환자들에게 그대로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현재 항암제 개발의 현실이다. 제약회사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고, 주주에게 책임이 있으며, 수천억 원이 투입되는 신약 개발에서 실패는 치명적이다. 따라서 가능한 모든 합법적 전략을 동원하여 임상시험을 성공시키려 한다. 과학적으로 설명되고 있는 임상시험 결과의 내용에는 사실 이러한 제약회사의 역학이 교모하게 숨어있다.
#sisyphus